1.
어른이란 뭘까. ‘방백’의 음악을 들으며 어른의 고뇌를 곱씹는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가 인생의 한 사이클을 돌고서 (약 20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웬만한 자신의 영화를 청불으로 심의위원회에 낸다고 한다. 음악에 영화 같은 심의가 있다면 방백의 음악이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짙고 무겁고, 또 진득하다. 감정의 동요를 이야기하지만 들뜨지 않는다. 사랑이 일으키는 침잠을 고백하고, 유약함이 만드는 서글픔을 씹어 삼킨다. 언제쯤 이 감정의 질감에 온전히 포획될 수 있을까? 어떤 정서들은 너무나 고유하여 간접적으로도 감각하기 어렵다. 언어는 심각하게 감각을 훼손하고 정서를 기만한다. 요즘은 지식과 레퍼런스만큼이나 내가 다룰 수 있는 도구들이 부족함을 느낀다. 더 많이 깨져야 한다.
2.
적절하게 교류했다. 학기 초에는 무지의 공간을 이리저리 메워보려고 발악을 했는데, 한 흐름이 중단되고 돌아보니 나름의 위치에 적응했다. 예전보다 타인에 접근 속도를 줄여가며 불확실함의 영역을 지워갔다. 강박이 냈을 상처도,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많이 줄인 것 같다. 순간의 침묵은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 분열을 일으키지 않았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좋은 태도를 많이 배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대화의 공백을 촘촘히 내는 법을 익힌 점이다. 최강록이 왜 고작 파에 칼집을 세심히 내어 조리는가 싶었는데 뭐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흐트러지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무결함을 고백할 필요는 없다. 더 간결한 선언적 행위들이 있다.
3.
필요한 만큼 이별했다. 그렇다고 돌아선 길에 칼을 꽂지도 않았다. 늘어짐이 아닌 헤어짐으로써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4.
오래 만나고픈 사람들이 있다면, 붕괴와 공존을 동시에 말하는 이들이다. 절망의 감각을 보유한 채로 번뜩임이 있는 사람들이 좋다. 사회적 분야에서의 동작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관계에서 포착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한한 긍정이 안겨주는 공허함도, 끝없는 침잠이 일으키는 우울감도 거부한 이들. 그리하여 거듭해, 죽겠다면서도 동반자를 찾는 이들. 서로에게 조소를 보내며 미안함을 느끼는 모순들, 갈등하고 번뇌하고 후회하는 이들. 좌절해 길바닥에 뻗곤 하지만 절대로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이들. 괴로움을 마냥 낙관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 이들의 ‘갈등하는 눈동자’가 반짝인다. 생각보다 외롭고 찌질한, 그래서 이 도시의 영웅이 된 사람들.
5.
기대를 받는 것이 비난을 받는 것보다 괴로울 때가 있다. 어렴풋이 서로를 이해한 때 그러하다. 자아비판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긍정적 기대가 자신을 좀 먹는다. 차라리 싫은 소리 했으면 하는 순간도 있다. 사람들의 형상이 희미하게 그려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좋고 좋은 소리하다보면 그 틀에 맞춰 기대를 품는다. 당신을 의도치 않게 꾀었다니. 정작 의도하고 꾈 때는 무엇도 끌려 나오지 않으면서. 흥칫.
6.
흔들리고 부유하고 도망치고 표류하고 허탈하고 느껍다가 개운하고. 잔잔한 바다에서 뒹굴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상상, 근데 사라짐을 알리고픈 욕망, 비웃고 조롱하고 폭소하고 꺼이꺼이. 잠시 기대다가 호흡한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정리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기대하고 설레다가 미안해져. 후회하다가, 더 많이 껴안을 것을. 긴장하며, 당황하고, 보낸다. “터벅터벅 걷네,” 다짐하고. 이 거리는 끌어안고 끌어안고 끌어안고 끌어안고, 끌어안고.
7.
어떤 음악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변형한 가사의 출처를 소개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실제 음악은 <서로를 바라보며 XXXX>(김오키, [스피릿선발대])이었는데, 제목을 착각해 <사라지고 또>라고 말하다가 결국 <이겨내는 것들>이라고 소개해버렸다. 기실, 아무렴 괜찮다.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지만, 그래서 무엇이더라도 괜찮은 거다.
'편片'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파티51>, 오늘도 절망을 끌어안으려면 (1) | 2023.06.10 |
|---|---|
| 00성 냠냠. (0) | 2023.05.10 |
| 빈말의 향연 (0) | 2023.04.15 |
| 적응에 관한 오늘밤의 답변 (0) | 2023.01.08 |
| 건식성 눈물의 괴로움(1) (0) | 202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