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片

적응에 관한 오늘밤의 답변

아흐메드 2023. 1. 8. 01:02

타인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못하는 시절에는 울거나 웃거나, 표정과 행동만으로 마음을 전달하곤 했다. 감정은 말초적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꾸밈없이 진실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우는 내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았을 것이며, 나를 향한 주변인들의 모든 응답은 최우선적이고 즉각적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을 때, 그 아이가 "사실은 심심해서 배고픈 척 좀 해보았습니다."라고 능청스레 답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않을 테니까..

 

거짓을 만드는 것은 성장된 소통 능력일까, 학습된 심리 상태일까?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타인이 존재할 즈음에는 어떠한 표현들은 완전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은 언제나 같은 경쟁의 발판 위에 서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표현에는 거짓이 첨가되어 있거나 진실이 부족했다.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이들의 간곡(해 보이는)한 요청에 쉽게 믿음의 응답을 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 상황은 우리를 특정한 경향성을 띈 동물로 진화하게 했다. 신뢰와 연대에서, 불신과 각자도생에 특화되도록.

 

한국 사회의 시대적 특성에 주목하기엔 범세계(정확히는 제1세계 선진국)적이고, 세계적 조류로 환원하기엔 미시적 주제라서, 진자 운동과 같이 저 멀리 간 불안의 추가 언젠가 낙관의 영역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내며, "왜 하필 초라해지는 것은 나인가?" 하는 자기중심적 질문을 곱씹게 된다. 우물우물.. 진심의 부재가 생존에 위협을 가한다고 말하면 너무 기만적인 얘기일까? 그러나 그마저 증명받고 싶지는 않다.

 

괴로움의 화살은 타인에게 날아간다. 내가 쓸쓸하니 타인도 그 이상으로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것인지, 그래야만 내가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다는 것인지. 내 외로움의 무게를 같이 져달라는 것인지, 자기표현(배설)이랍시고 게워낸 토사물을 받아내달라는 것인지. 되었다, 그냥 다 필요없고 내 이야기에만 귀 기울여?! 고고한 척 서사를 잃은 타인을 실컷 욕하고, 뒤돌아서 히히덕대며 순간을 탐닉하는 나를 용서하는 일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타개법은 있는 것일까? 실은 나의 불만을 개략적으로나마 이해한 이들의 응답은 예상보다 단순했다. 미안하지만 그저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그간 너만의 노력과 애정을 쏟아야 하고 때때로 조금 위선적이어도 눈에 띄게 표현해야 한다고. 솔직히 답변이 그들의 덤덤함만치 와닿지 않는다. 고통에 초연해 보이는 이들은 강인해 보이기보다 늙고, 낡아 순응한 듯 보인다. 세상에는 진심만으로 안 되는 일이 많구나, 하는 탄식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늙어가는 건가 싶다. 이러한 경험을 '성숙'이 아니라 '늙음'으로 받아들임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밤까지는, 하루를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력감을 체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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