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구석구석이 날로 안 좋아지고 있다. 허리는 예전부터 상태가 안 좋았고.. 소화계도 그러했고. 작년부터 눈 건강도 몹시 나빠졌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최근에는 신경계가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들은 수험 생활을 지속하는데 있어 대처가 가능한 수준의 통증이다. 허리는 커블 앉아서 정좌 유지하면 되고.. 좀 더럽고 불편해도 소화계는 참을 수 있고 안경도 쓰라면 쓸 수 있다. 허나 목 건강만큼은 대처가 어렵다. 텍스트를 지속적으로 읽고 쓰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목을 굽히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칭도 하고 최근에는 독서대를 배치해서 수학 문풀이나 영단어 암기 등은 판에 대고 하고 있는데.. 그래도 지속적으로 오는 통증을 피할 수 없다. 목 근육의 뻐근함은 물론, 신경을 타고 오른손이 저려와 불편하고 아프다. 미미한 두통이 뒷통수를 타고 와 짜증을 돋우는 것은 덤이다.
예전에 자주 오가던 곳에 '하늘도 보고 살자'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좋은 말이지. 땅바닥만 보고 - 난 그때 주로 작은 책을 보며 지나갔지 - 지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그래.. 하늘을 보고. 고개를 올려다 보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목도 덜 아프고...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저녁에는 버거킹에 갔는데 그곳의 직원들에게 잠깐 부러움을 느끼다 말았다. 버거킹은 오더와 매뉴얼이 직원 시선의 상단에 보이는 시스템인데, 그래선지 보드도 카운터도 다 고개를 위로 들고 일을 하더라. 그 상황을 지켜보며 '저기서 일하면 목은 안 아프겠네..' 생각이 들다가 급히 접었다. 패스트푸드점의 노동 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치즈와퍼를 먹으며 생각했지.
'하늘은 우리가 올려다봐야만 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올려다보는 곳마다 하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누구나 탐할 수 있지. 하지만 모두가 탐할 필요가 있는 곳은 아니다.
또 누구나 하늘을 취하고자 할 수 있지만 의지를 가진 모든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개를 치켜들고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항상 하늘이 보이는 건 아니지. 오더판과 주광 조명, 6층 빌딩을 벗어나야만.. 그만큼 벗어나 하늘을 본다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윽고 애써 바라본 그곳에 청량한 하늘이 아닌, 어둑한 먹구름만 가득할 수도 있지. 그리하여 형태만 달리한, 주체성을 잃은 채 폭주하는 의무와 규율이, 당연한 수순인 양 생활을 옥죄어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늘은, 고개만 까딱. 하여 바라볼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치켜세운 그곳은 하늘로 위장한 하늘의 스튜디오. 크리스토프가 웃고 있을지 알게 뭐람. 우리를 기만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상징과 허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 하늘의 형상을 그려볼 수 있다. 집요하고 고독한 자신과의 쟁투를 통해 그 하늘에 손가락 하나라도 얹어보고 하늘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거다. 그 쟁투의 종류는 어떠하더라도 괜찮다. 우리를 자만하게 하지 않고 몸을 굽힌 채 되돌아볼 어떤 것이든.
그런 고로, 나는 하늘을 보기 위해서 4월의 어느날에도 모가지를 거푸 책상에 내려 처박고 숫자와의 씨름을 하는 것이다. 저릿한 두통과 카페인에 절여진 짜증을 섞어, 가능충 다항함수 새끼를 미분으로 패버리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숙일수록 언젠가 이 손에 닿을 하늘, SKY.